“ 광주의 역사와 함께한 백년 양동큰장 ”
구한말 이전, 양동 일대는 사람이 많이 살지않는 버려진 야산지대였다. 복개시장 일대를 비롯한 광주천은 깊은 산골계곡처럼 큰 바위덩이들이 지천에 널려있고 광주천변은 늪지대로 갈대들이 우거져 있었다. 양동에는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. 당시 사람들은 우물 근처에 있는 마을을 '샘목','샘말'이라 불렀다. 일제강점기에 한자식 지명을 사용하면서 샘 천(泉)자를 써서 '천정(泉町)'으로 바뀌었다. 이후 양동 일대 하천변에 커다란 장이 들어서며 '상업유통 중심지'로 발돋움 하게 됐다. 상업지역으로 발달하다보니 도내는 물론이고 전국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. 해방된 후 일본식 지명에서 다시 이름이 바뀌었는데, 그 때 억센 시장터지만 어질고 순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양동(良洞)이라고 정했다고 한다.
양동시장 100년의 역사
“서민생활의 중심지였던 양동시장” 은 생활용품이 넉넉지 못한 시절, 의식주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던 삶의 터전으로 100년이라는 긴 시간을 관통해 오늘날 이렇게 우리의 곁에 남아있다.
때로는 불에 타고, 때로는 물난리로 쓸려가고. 그러나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…….
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발길과 그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남겨진 아주 오래된 시장 「양동」
이제 일제강점기와 광복, 민주화운동 등의 숱한 역사의 질곡을 딛고 늘 광주시민들과 함께 해온 양동시장의 100년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.
- 1940년
- 일제강점기 지금의 양동시장으로 이전
- 1942년
- 해방 이후 광주시에 귀속돼 관영시장으로 새출발
- 2006년
- 전국상인연합회광주지회 승인
우수모범시장 대통령상 수상
- 2015년
- 대한민국 우수전통시장 인증
전국우수시장박람회 최우수상
골목형시장육성사업 선정